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에겐 언제나 위험과, 고뇌와, 참지 못할 순간이 온다. 그것이 언제일지, 어떤 순간에 어떤 표정으로 맞이할 수 있을지... 우리는 그런 것들의 제대로된, 구체적인 모습조차 상상하지 못한 채 삶을 맞이하고, 삶을 마무리 짓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양한 가치 기준으로, 다양한 우선순위로, 다양한 욕구로 그 과정을 극복하거나, 도망치거나,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어떨 때는 극복하는 영웅이 되기를 바라고, 어떨 때는 도망치는 비겁자가 되는게 '현실적'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속을 속이는 것인지 솔직해지는 것인지 혼란 그 자체로 살아간다. 그것은 고통이라고 이야기 하고, 세계 3대 종교 중 내가 아는 한 두 종교에서는 이러한 고통이 생애에 필연적인 존재라고 그렇게들 이야기 한다.
그런 삶에서 한 순간 순간, 그 순간의 한 꼭지가 지금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이어온 크고 작은 일들. 그 중에서도 지금의 나에게 온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생의, 지금까지의 가장 큰 일이 아닐까? 그만큼 괴로웠고, 그만큼 두려운 순간이 왔다고 지금 어느정도 잠잠해진 내 마음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게 된다.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력은 해봤었다. 이겨내고, 이겨내고, 인정 받고, 인정 받아왔다. 누가 뭐래도 살아남고 싶었고, 누가 뭐래도 정말 큰, 명확한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그게 지금까지의 인생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다른사람이 뭐라 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건데 아니긴 하다). 아픈 소리는 뒤로, 내 속으로만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성인으로의 시기는 마치 성공적인 프롤로그였던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가장 큰 가치라는 그리스도도 강하게 붙잡고 있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전공에 대한 비전이나 열망은 어느 누구보다 지지 않을 자부심이 있었다. 27의 나는 정말로 그런 패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란 이름의 '조건'은 사뭇 달랐다. 추가적인 공부를 할 수 있을 돈도, 여력도, 누군가의 따뜻한 지지의 한 마디도 받을 수 없었고, 호주에서의 나는 지켜짐을 받지 못하는 그저 작디 작은 외노자였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현실은? 부를 쌓아올린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에 따라가지조차 못하는 나의 현실. 희극처럼, 참고 견디고 조만간 일어설 것 같다던 나의 허세는 결국 혼자가 된 시점에 무너져 내렸다. 눈물을 흘릴 수도 없고, 약한 척 조차 못하는 그 순간이란..! 일생의 큰 순간을 들여 돈을 모아도 모이지 않을게 보이는 현실, 목표라고 이야기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내 목표'가 아님을 느끼는 순간 순간들은 마치 정신병에 걸린 심신미약자가 된 듯 몇 번을 도망쳤고, 도망쳐서, 도망쳐서 겉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나의 그런 순간은 곧 내 삶에 대한 십자가, 예수라는 존재와 어떤 연결이 도대체 있는가에 대한 엄청난 도전과 부딪힘이 시작되기도 했다. 현실에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사랑하고 버티기란 쉽지 않았고, 나도 받고 싶고, 나도 누리고 싶은 것들을 그저 주기만 해야 한다는 현실에 교회든, 그 교회 공동체든, 리더든 위선자들이란 생각이 들어섰다. 그들의 말에 도대체 현실미란 존재하긴 하나? 이런 질문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물음의 끝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도전, 내지는 모욕과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이어졌다. 내가 사랑받았다고, 구원받았다고, 그 구원이 은혜라고 이야기 한 것을 다 누렸음에도... 나의 '불신'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나는 생각해본다. 도대체 하나님 믿는 다고 나의 현실은 1도 바뀌지 않는다고, 교회의 착한 아이 증후군의 빠진 것만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 그게 내 고비의 절정부였다. 정말로 벼랑끝. 실망과 불신과, 고독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내심 아직 내 마음은 어떤가? 글을 쓰기 전 나에게 주어진 몇 일의 시간은 그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 도대체 수십년을 믿어온 이들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견딘거지? 아니, 견딘게 맞나? 견딜만 한 것인가? 내 생각의 꼬리는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에 만나신 아버지의 은사님. 그 분은 나의 은사님이기도 하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단호하게 말씀을 해주셨었다. '답은 다 알고 있다.", "만족을 누리지 못하지만, 그건 끝이 없을 것이다. 그 만족을 하나님께로부터 누려라." "왜 가장 원하는 그것을 구해보지 않았는가?" 사실, 여전히 내 마음은 뿌연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변함은 없지만... 뭔가 내 믿음에서, 내 삶에서 순서가 잘못된게 있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나님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주지 않는 존재다. 교회는 위선적이다. 현실은 그렇게나 잔혹하고,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곳이다- 그런 식으로 단념하고, 분노하고, 절망했던 내 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잘 못된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 순간, 나는 달라져야 함을, 또 달라질 기회임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문제는 산재하고 있다. 너무 많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됨을, 쓰려고 함을 느낀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내 나름의 믿음, 내 나름의 삶에 대한 바른 이해.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산다는 게 뭔가- 라는 것에 대한 도전을 하고 싶다. 여전히 나는 삐딱하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로, 글을 이제는 더 이상 숨기면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 속으로 그냥 나혼자 생각하지 않고, 뭔가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생활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다림을 배워보려고 한다. 간절함도 배워보고자 한다. 까짓거, 두려워할 정도로 다행이도 가족들은 괜찮다. 내 무게가 부담이 될까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우선은 어쩔 수 없다. 백배 천배 갚아줄 수..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도와달라고 하려고 한다.
< 하고 싶은, 해야할 일>
1. 다이어트를 위한 철저한 유산소 운동 스케쥴링 ; 정말로 누가 뭐라해도 정상체중 만들고 싶다.
2. 영어 완성 : 토익 990점 맞기, 회화 중고급 이상 완성시키기 ~ 회화에 문제 없을 정도로 만들기(올해 안에)
3.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그걸 위한 진짜 진심을 담은 기도 진행하기
4. 사회학을 다시 정리하는 글, 사회와 관련된 글들을 블로그에 꾸준히 적으면서, 왜 하나님-사회학의 연결고리가 필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도록 만들기